음반

왜 이렇게 쓰기가 힘들지 =_= 쓰기 시작하면 쭉쭉 나가야 하는데... 잘 안 됨.

즉흥연주 피아노, 바리톤, 16명의 연주자를 위한 Tongue of the Invisible (2010–11)

Uri Caine 피아노
Omar Ebrahim 바리톤
Ensemble musikFabrik
지휘: André de Ridder

첼로 독주곡 Invisibility (2009)로 이 작곡가의 음악을 처음 접하고 꽤나 좋은 인상을 받았다. 이제까지는 유튜브 동영상이나 라디오 녹음으로나 접하고 있던 차에 몇 달 전 나온 이 음반을 사서 열심히 듣고 있다. 관현악곡을 모은 음반이 하나 더 나온다고 하니 그것도 곧 사게 되지 않을까 싶음.

림의 작품은 지금까지 (내가 들어본 바로는) 주로 중국이나 아보리진 문화를 바탕으로 한 것들이 많았다. Invisibility도 아보리진 예술에서 영감을 받아 초자연의 보이지 않는 힘을 표현한 곡. 물론 이런 다양한 시도들은 서구 아방가르드 예술 음악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작품은 중세 페르시아의 유명한 시인 하피즈의 시를 텍스트로 하였는데 내게는 이전 시도의 연장에 더 가깝다고 보여짐. 작품의 제목도 하피즈의 별명에서 따온 것이다.

이 작품의 중심에 놓여 있는 아이디어는 림의 표현을 빌려서 "고정된" 것과 "열린" 것의 공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미 구체적으로 악보에 쓰여진 것과 연주자가 즉흥으로 연주할 수 있는 것(물론 일정한 제약 하에서)으로 설명된다. 6악장은 전체가 피아노가 예전 악장들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즉흥연주를 하도록 되어 있으며, 또한 5악장의 오보에 솔로는 정해진 구간들 여러 개를 놓고 연주자가 직접 순서를 정해서 연주하도록 하고 있다.

1악장에서 아직 바리톤이 등장하기 전에는 타악기, 비올라, 오보에가 주인공이 되는 기악 연주로 시작되는데, 이렇게 화려한 기악 선율들은 작품 내내 등장해서 마치 전주곡과 같은 역할을 한다. 드럼 패턴으로 연주되는 제의를 연상하게 하는 최면적 리듬과 기악 연주의 각종 장식음들은 작품 곳곳에 위치한 클라이막스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음악을 이끄는 핵심은 당연히 바리톤의 가창 전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그에게는 곡 내내 극한의 격정을 이끌어내어 텍스트를 구현할 것이 요구되고 있으며, 이것은 곡이 진행되면서 더 과감해지고 격렬하게 떨리는 목소리를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50분이 넘는 대규모에 워낙 다채로운 모습을 하고 있는 작품이기에 다소 몰입도가 떨어지는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러나 최근 들어본 음악 중 이렇게 축적되는 구조를 통한 감흥을 잘 살린 예시도 드물다. 편하게 들을 수는 없으나, 그에 걸맞는 경험을 가져다주는 작품으로 인상 깊게 들었다.

브루노 만토바니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위한 Huit moments musicaux (2008)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Cinq pièces pour Paul Klee (2007)
피아노를 위한 Suonare (2006)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D’une seule voix (2007)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All’ungarese (2009)

Trio Wanderer
Claire Désert 피아노

피아노 삼중주곡 Huit moments musicaux의 제목을 들으면 슈베르트의 유명한 피아노 소곡집 '악흥의 순간들'을 바로 떠올리게 된다. 슈베르트를 위한 오마주라고 읽히는데, 시대의 간격이 워낙 커서 그런지 이 곡을 듣기만 해서는 슈베르트 음악의 자취를 읽기는 조금 힘든 것 같긴 함. 내지를 읽어보니 슈베르트의 이름에서 따온 동기 F-A-Es-C-H를 사용했다고. 생동감 넘치는 피아노와 현악기가 서로 부딪히고 계속 역할을 바꾸면서 곡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아이디어가 특출난 것은 아니지만 완급 조절이 좋고 섬세하게 짜여져 있는 것은 마음에 들었다.

20세기 작곡가들에서 영감을 얻은 곡들에서는 조금 더 유사성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프랑스 선배들 특히 라벨과 메시앙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 피아노 독주곡 Suonare와 버르토크, 그 중에서도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을 생각하며 썼다는 All’ungarese인데, 특히 Suonare에서는 화려한 기교뿐만 아니라 곡이 진행하면서 점차적으로 소리의 레퍼런스가 옮겨가는 데서 듣는 재미가 있었음. 아무래도 약간 진부한 과거 음악의 소리를 들려준다는 건 조금 아쉽지만.

처음 기대하던 것보다는 꽤 가벼운 작품들이다보니 몇 번 돌리다 보면 수월하게 들을 수가 있었다. 작곡가는 복잡한 리듬과 선율을 그리면서도 낭만성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아주 뛰어나다 싶은 작품은 없긴 한데 작품 각자 개성이 뚜렷하고 앨범 구성도 매끄러워서 듣기가 좋다. 앞으로는 다른 거 듣다가 조금 지칠 때 듣게 될 것 같음.

드뷔시, 판 이메르세일

2013. 8. 26. 02:04

부지런해지려고 했지만 ... 역시나. 그렇다고 그 동안 아무 것도 안 한 건 아니고, 이진상의 피아노 리사이틀도 보러 갔음. 프로그램이 좋았고, 괜찮은 연주로 들을 수 있어서 만족했다는 것 외에 별달리 할 말이 없어서 굳이 후기는 쓰지 않았다. 그에 말을 덧붙이기에는 내게 워낙 피아노는 거리가 있는 악기라서. 앙코르로 뭘 연주했는지도 모르겠고.

이제 본론.

클로드 드뷔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바다
관현악을 위한 영상들(이미지들)

아니마 에테르나 브뤼허
지휘: 요스 판 이메르세일

근대의 음악을 동시대 악기로 연주한다는 개념은 딱히 새로운 것은 아니고 동 악단, 지휘자가 이미 시도도 했기 때문에 그쪽 덕후들에게는 그다지 놀랍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리스닝 경험이 일천한 나에게는 그것과 별개로 눈이 확 뜨이는 경험이었다. 대충 검색을 해보니 거트 스트링, 당대의 프랑스제 관악기를 썼다는 것을 가디언 리뷰에서 읽을 수 있었다.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산뜻하고 투명한 음색은 당연히 기존의 연주와는 이질적인 표현을 만드는데, 특히 목관의 약간 날카롭고 다듬어지지 않은 음색이나, 여리게 연주하는 부분에서도 웅얼대지 않고 '멜로디'를 그리는 현을 특히 주목하게 된다. 이런 연주가 흔히 그렇듯이 현대 오케스트라의 양감은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대신 창을 완전히 젖혀놓고 채도 높은 풍경을 바라보는 듯 생생하다는 감상을 가지게 한다.

세 작품은 작곡 순서 순으로 실려있다. 비현실적이고 모호한 분위기의 작품인 '전주곡'부터 묘사적이고 회화적인 인상을 남기는 '영상들'까지 작풍의 변화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구성이다. 나는 굳이 순서대로 듣는 편은 아니고 개별 작품을 따로 듣거나 혹은 아무렇게나 섞어서 들을 때가 많기는 하지만.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의 해석은 그 꿈결 같은 나른함을 살리는 데 집중되어 있다. 비록 달콤하고 아름다운 사운드를 듣는 것 그 자체로 매력이 넘치기는 하지만, 연주 전체를 들었을 때 조금 더 긴장감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또한 다른 연주들보다 확실히 느린 템포는 약간 일부러 끄는 듯이 작위적이어서, 청량감 있는 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다행히도 바로 다음 곡 '바다'에서 그의 밀고 당김에서 느껴지는 유연함은 전주곡에서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완급의 조절은 정말로 물이 일렁이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특히 2악장 '파도의 유희'의 뒷부분을 정말 좋아한다.

관현악을 위한 '영상들'에서 지휘자는 일반적인 순서(지그-이베리아-봄의 론도 순)를 따르지 않고 '봄의 론도'를 첫번째로 연주하고, '이베리아'를 마지막으로 끌었다. 그는 내지에서 이 순서는 앙드레 카플레가 작곡가 사후인 1922년에 연주한 것을 따른 것이며, 드뷔시의 제안을 따른 것인지 카플레 본인의 결정인지는 모르겠다고 썼다. 그리고 지휘자 본인이 느끼기에 음악적으로 가장 적절한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영상들'의 연주는 이 음반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특히 밝고 깨끗한 관현악의 질감은 살아 움직이는 듯 이리저리 튀는 악상과 탁월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펠드만: Violin and Orchestra

2013. 8. 11. 18:10

펠드만: 바이올린과 관현악

카롤린 비트만, 바이올린
헤센 방송교향악단
지휘: 에밀리오 포마리코

들은 음반은 많은데 정작 쓰려니까 손가락이 오그라듦. 그래도 더 늦지 않게 감상을 글로 옮겨야겠다. 계속 안 쓰고 있으려니까 찝찝하기도 하고.

1970년대에 펠드만은 Piano and Orchestra, Oboe and Orchestra, String Quartet and Orchestra 등 솔로 악기(악단) + 관현악 편성의 작품들을 몇 작품 썼다. cpo에서 나온 음반을 들어봤는데, 워낙 오래 전이라서 잘 생각이 안 난다. 그 중 Violin and Orchestra는 마지막으로 쓰여진 작품으로 그는 나중에는 협주 형식의 작품은 쓰지 않았다.

편의상 협주라는 말을 썼지만, 솔로 바이올린이나 관현악이나 전혀 전통적인 협주곡에서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주고 받는 것은 들리지만, 독주 악기를 관현악이 받쳐준다거나, 독주와 관현악이 갈등하는 상황 같은 것은 없다. 대편성 관현악은 펠드만의 모든 작품에서 그렇듯 시종일관 억제된 음향으로 마치 거대한 힘의 일부만을 드러내는 듯하다. 바이올린 또한 비르투오조적인 과시 없이 그저 관현악과 함께 둥둥 떠다닌다.

단순한 음악적 아이디어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패시지를 몇 번 반복하고 그 다음으로 넘어간다. 약간 패턴을 찾을 수 있는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결국 전체적으로는 선명한 논리적 구조라기보다 흘러가고 펼쳐지는 것에 가깝다 보여진다. 80년대 이후의 작품들이 건축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단단한 짜임새를 이루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을 80년대 (후기) 펠드만으로 넘어가는 이행기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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