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정명훈의 영웅의 생애

2014. 1. 11. 23:13

트윗을 해도 될 정도의 길이가 될 듯.

루트비히 판 베토벤: 레오노레 서곡 제3번
진은숙: 생황과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Šu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교향시 '영웅의 생애'

우웨이, 생황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 정명훈

2014년 1월 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레오노레 서곡은 처음에 조금씩 실수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다음부터는 괜찮았던 기억. 현이 마음에 들었음.

진은숙의 생황 협주곡은 워낙 오래 전에 라디오로 한두 번 들은 작품이라서 희미한 기억과 비교대조해보자는 마음으로 들었는데, 거기서 듣고 본 게 '생황이 이렇게 생긴 악기구나' 그게 다였음. 에휴. 처음 생황의 독주로 시작해서 현을 시작으로 악기들이 차츰차츰 더해지는 초반부터 아무런 감흥이 없었고, 2층에 위치한 현악기들이 하모닉스로 허접하게 마무리... 작품 자체가 얌전한 모범생 같아서 더 마음에 안 들었다. 독주 악기의 다양한 기교와 독주, 오케스트라의 밸런스 같은 것은 베테랑 작곡가답게 괜찮았으나, 진은숙 정도의 작곡가라면 그보다 더 많이 들려줘야 하지 않을까. 이 작품은 너무 진부한 탓에 뭔가 맛을 보고 싶어도 볼 게 없었다.

독주자의 앙코르는 성의는 감사하지만 굳이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영웅의 생애'는 그날 처음 들은 곡이라서 연주에 대해서 이리저리 말할 것은 없다. 곡 자체는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분명해서 지루하지 않게 들을 수 있었고 트럼펫 주자들이 퇴장했다가 무대 뒤에서 연주하는 장치도 효과적이었음. 음색부터가 내 취향에는 약간 맞지 않는 건지 루세브의 솔로는 살짝 느끼했다는 생각이 들고.

지금 아니면 당분간 블로그를 만질 시간이 없음. 여차하면 이 글 하나로 12월까지 버텨야 할지도...

피에르 불레즈: 관현악을 위한 노타시옹
안톤 브루크너: 교향곡 제7번 마장조

베를리너 필하모니커
지휘: 사이먼 래틀

2013년 11월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원래 베를린 필은 예정에 없었는데 어떤 분의 도움을 받아 기회를 얻어 갈 수 있었다. 공연 일주일 전만 해도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런 행운이 올 줄이야...

재작년 호소카와 도시오의 호른 협주곡을 올렸듯 이번에도 현대음악 작품을 한 곡 포함했다. 불레즈의 노타시옹과 브루크너 7번의 조합은 굳이 국외 투어가 아니더라도 만나기 어려운 구성일텐데, 아직 청중 모두가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라도 베를린 필의 지향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담으로 익숙하지 않은 작품들일테도 빈 자리가 별로 없이 차는 걸 보고 악단의 이름값을 실감했음. 초대권도 별로 없고 거의 대부분이 유료관객이라는데.

불레즈는 워낙 완벽주의자이기도 하고, 작품 하나하나가 버릴 것이 없을 테지만 '노타시옹'은 불레즈 작품 중에서는 덜 선호하는 작품이었다. 효과가 뛰어나서 자주 연주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들으면서 감동을 받았다거나 엄청나게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한 적은 사실 없는데 실연으로 처음 들으며 이 작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걸 제대로 확인하고 왔다. 그 음향은 가서 듣지 않으면 도저히 뭔지 알 수 없었을 것 같음. 합창석에 앉아서 들었기 때문에 그 섬세함 그대로를 즐기기는 조금 어려웠으나 그래도 충분히 만족... 래틀의 해석도 꽤나 흥미로웠는데 이리저리 돌아가는 일이 없이 아주 직설적이고 감각적이었음. 음악의 포인트를 딱딱 찝어주면서 청중에게 "이깟 거 별거 아님 그냥 따라오셈" 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베를린 필의 연주야 두 말하면 섭하겠지만 특히 내게는 피아니시모가 인상적이었다. 이제까지 내가 들어본 어느 악단도 들려준 적 없는 그 또렷또렷함이라니... 아예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것 같았달까. 홀을 쩌렁쩌렁하게 울릴 때도 그냥 크기만 한 게 아니라 조금의 빈틈도 없이 꽉 찬 소리... 마치 김연아의 점프를 보는 듯한 감동이었음.

브루크너에 대해선 워낙 아는 게 없기 때문에; 말을 늘어놓기가 어렵기는 한데 별로 익숙하지 않은 곡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괜찮은 연주였던 것 같음. 마치 곡을 쭉 펼쳐서 보여주는 것 같았음. 악상의 흐름이 길게 이어지는데 막힘 없이 자연스럽게 나아가네. 오케스트라 전체가 그 흐름을 타면서 서서히 감정이 끌어올려지면서 느낀 그 순간순간의 감동을 잊기 힘들 것 같다. 3악장까지 만족스럽게 듣다가 4악장에 가서는 지쳐서 음악이 잘 안 들리긴 했지만.

베를린 필이 다녀가기만 하면 온통 내가 아는 클음 커뮤니티는 난리가 나던데 그 정도로 극딜당할 연주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음.

비톨트 루토스와프스키: 자허 변주곡
(바로 이어서) 마그누스 린드베리: 스트로크
쿠르타그 저르지: 사인들, 게임들과 메시지들
(바로 이어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첼로 모음곡 제3번 BWV 1009
코다이 졸탄: 무반주 첼로를 위한 소나타

장 기엔 케라스, 첼로

2013년 11월 13일
LG아트센터

처음에는 프로그램이 없는데다 예습도 안 하고 가서 (게을러서 보통 안 함) 처음 두 작품을 붙여서 연주하는지도 몰랐다. 프로그램을 사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자허 변주곡이 굉장히 짧은 곡이었다는 걸 깨달음. 들으면서 대충 느낀 2악장으로 나뉘는 게 아니었어 ㅋㅋㅋ 들으면서도 2악장이 더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만큼 린드베리의 '스트로크'가 괜찮은 작품이었음. 현대음악 독주곡답게 다양한 주법들이 망라되어 있는데, 사실 거기에 치우치지 않고 이미지를 형상화하는데 몰두한 듯하다는 생각을 (나중에 다시 들으면서) 함. 잠깐 쉬고 나서 쿠르타그를 연주했는데 그 특유의 압축된 표현이 드러나는 작품이었음. 케라스는 아주 매끄럽게 연주했지만 음악 자체는 약간 투박하면서도 진중했던 것 같고. 바로 바흐를 이어서 연주했는데 신기하다 싶을 만큼 잘 어울리더라.

케라스의 바흐는 음반으로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때와는 굉장히 다르게 다가왔음. 특히 귀족적이면서도 뭔가 붕 뜬 음색은 음악에 굉장히 특이한 캐릭터를 부여하고 있었음. 루바토가 약간 적응이 안 될 때가 있었다는 걸 빼면 아주 좋은 연주였음.

코다이의 소나타를 2부에 연주했는데 물론 대강 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도 장대한 곡이었다. ㄷㄷ 첼로 독주곡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곡이었는데 연주하는 것만큼이나 듣는 것도 체력을 요하는 곡이더라. 같이 가신 분은 첼로 하나에서 우주를 느낄 수 있는 곡이라면서 흥분하셨다 ㅎㅎ 들으면서 웃었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닌 듯.

앙코르로 바흐 모음곡 1번 일부와 뒤티외의 Trois strophes sur le nom de Sacher를 연주함. 바흐 모음곡은 그냥저냥이었는데 뒤티외에 충격을 받음. 정명훈의 협주곡 음반에 끼어있는 이 곡을 들을땐 이렇게 훌륭한 작품인 줄 몰랐는데 다시 한 번 클래스가 어떤 건지 확인했다.

이틀 연속으로 나다니느라 고생. 이제 시험 끝날 때까지 공연 못 다닐 걸 생각하니 조금 슬퍼...

지금 후기를 작성한다는 게 별로 의미는 없겠지만 그냥 블로그에 글을 채워야 할 것 같기 때문에 쓰는 간단 후기임. 12시 전까지 다 써서 10월에 글을 두 개 썼다는 걸 남기는 것이 목표.

줄리안 앤더슨: 기도서
앙리 뒤티외: 메타볼
클로드 드뷔시: 유희
트리스탕 뮈라이: 세계의 탈주술화

프랑수아-프레데릭 기, 피아노 (4)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 티에리 피셔

2013년 10월 1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줄리안 앤더슨의 '기도서'는 효과가 좋은 작품이었다. 두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데 같은 음계로 시작하지만 사소한 부분이 틀어지면서 전혀 다르게 전개된다. 암전된 상태에서 전자음이 온 홀을 뒤덮는 부분은 역시 대중음악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면서도 현대음악의 매력을 잃지 않은 것이 인상적. 단지 전자음악이 어쿠스틱 속에 조금 더 매끄럽게 통합되어 표현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약간 gimmick의 냄새가 났다는 게 단점. 특히 레코드판 소음은 왜 넣었는지 모르겠음. 작곡가가 설정해 놓은 의미가 있기야 하겠지만.

메타볼은 역시 좋았음. 변주곡과 같은 작품이라고 하던데 사전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느낌만 초반에 받았을 뿐 머리를 열심히 굴려가며 듣지는 못했다. 서울시향의 연주도 그만하면 만족했다.

드뷔시도 역시 좋았음. 이 작품에서는 드뷔시의 물 흐르듯한 매력이 극대화되고 있는데 이러한 유동성은 이후의 현대음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카더라.

뮈라이의 작풍이 2000년대 이후로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번에 들었던 Les sept Paroles도 그렇고 스펙트랄한 음향의 역할은 줄어들고 음색의 변화가 더욱 제한적이고 미묘해졌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음. 곡의 전개 부분에서는 그다지 나무랄 데가 없고, 관현악을 다루는 솜씨도 훌륭했지만... 결론적으로는 다소 실망이었다. 난 더 직접적인 걸 원한다는 걸 생생하게 느낌.

앙코르에서 드뷔시 전주곡 중 하나를 연주했는데 (제목 기억 안남) 훌륭했다.

15분만에 작성완료!

정신 없는 통에 블로그를 본의 아니게 방치해 두었다. 바쁜 것보단 게으른 탓이 더 크겠지만. 사실 그동안 쓰잘데 없는 타이쿤류 모바일 게임이나 하면서 놀았습니다.

각설하고. 지금 뮈라이 작품 녹음을 들으면서 이 포스트를 쓰고 있음. 방송 녹음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도움이 되는 날이 오긴 오는가보다.

죄르지 리게티: 선율들
파람 비르: 하야그리바
조현화: 마법사의 제자
트리스탕 뮈라이: 모래언덕의 정령
올리비에 메시앙: 천상의 도시의 색채

프랑수아-프레데릭 기, 피아노 (5)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 티에리 피셔

2013년 10월 9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리게티의 Melodien은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 중 하나다. 60년대 초의 Atmosphères의 우중충한 잿빛 사운드에서 점차 벗어나서 리게티의 음악은 조금씩 더 다채로운 빛깔을 띠게 됐다. 이전의 그 빽빽한 숲 같은 미크로폴리포니가 여기서는 조금 듬성듬성하게 풀려서 악기가 그리는 선율들이 조금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각 성부는 더 이상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뭉쳐지지 않고 흩어지거나 포개어지기만 할 뿐이다. 실연으로 이 곡을 들으니까 그 섬세하게 얽혀 있는 느낌이 제대로 살아있었다. 다만 연주의 수준은 살짝 아쉬웠다. 어제 전체 연주를 들으면서 딱 한 번 이 생각을 했다.

그 다음으로 연주된 작품은 처음 듣는 작곡가가 쓴 것이어서 약간 더 긴장을 하고 들었다. 연주회 전 진은숙 선생이 각 섹션의 색감을 이야기도 해주었는데; 내게는 별로 와닿지는 않았음. 현대음악의 경우에는 작곡가의 어법에 익숙해진 뒤에야 알 수 있는 부분도 있으므로 섣불리 뭐라고 하지는 않겠다. 작품을 들으면서 바로 전 리게티의 영향도 받았고, 버트위슬 생각도 났다. 기회가 된다면 더 들어보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음.

아르스 노바의 실내악 연주회에는 꼭 한국 작곡가의 작품이 하나씩 들어가는데, 다음 '마법사의 제자'는 작곡가 조현화가 직접 자기 작품을 설명하러 나왔다. 그는 작곡 기법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들으면 음악이 알아서 설명해줄 거라고 했고, 그 말 그대로였다. 작품의 질감이 전체적으로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는 가볍고, 반복되는 짧은 리듬 등으로 접근성을 높이려는 시도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미지도 꽤나 명확하게 전달되었고. 나는 그 폴 뒤카의 작품을 들어본 적은 없고 리게티의 피아노 연습곡 중 동일 제목의 작품은 알고 있는데, 두 작품 간에도 유사성이 어느 정도 느껴져서 재미있더라. 작품의 발상 자체는 작년 신동훈의 작품이 더 신선하다고 생각하지만.

2부는 프랑스 작곡가들의 두 작품이 연주가 되었다. 뮈라이의 작품은 단순히 스펙트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화성과 배음과 음색의 탐구에만 그치지 않고 풍부한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인상주의 음악을 연상하게 하는 묘사적인 제목을 쓰고 있지만 작품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오히려 건조함이 아닌 활발함이었다. 라이브 전자음이 아닌 샘플러를 쓰는 곡이라고 들었는데 효과가 아주 생생했다. 이래서 실연을 많이 들으러 가야 하는 듯.

마지막 메시앙의 Couleurs de la cité céleste가 진정한 하이라이트였다. 한 마디로 압도적이었다. 공기가 달라진다는 게 이런 거라고 느낄만큼. 관악의 유니슨이 제대로 꽂힐 때는 머리가 곤두서는 것처럼 짜릿하더라. 음 피아노 아저씨가 페달을 조금만 덜 썼으면 했을 때도 있었는데, 여기까지 바라는 건 너무 배가 부른 것이겠고. 메시앙 고유의 '색채'를 띤 화음, 금관의 묵직한 음색과 끝없이 뻗어 마치 정지된 듯한 리듬까지 정말 환상적으로 아름다웠음.

이제껏 아르스 노바를 그렇게까지 열심히 다녔던 것은 아니라고 해도, 나름대로 기회가 닿을 때마다 찾으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항상 만족했던 것은 아닌데 이번에는 이제껏 했던 것보다 조금 더 발전한 것 같다. 연주의 집중력도 더 좋아졌고 현대음악으로도 청중과의 교감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이 보여서 박수를 쳐주고 싶다.

지금 글 쓰고 있으면서도 기억이 계속 휘발되고 있음. 망한 리뷰가 될 것 같은 예감이...

인증은 일단 생략.

리하르트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
윤이상: 오보에/오보에 다모레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요하네스 브람스: 알붐블라트
요하네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라단조

하인츠 홀리거, 오보에/오보에 다모레
안드라스 시프, 피아노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 정명훈

2013년 9월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로 시작. 좋았음. 더 쓸 말이 없는 것 같다...?

윤이상의 오보에 협주곡은 오늘 처음 들어보는 작품. 비슷한(?) 클라리넷 협주곡은 들어본 적이 있는데 오보에 협주곡은 음반도 나와있지 않은 것 같고 유튜브에도 올라와있지 않아서 그냥 포기했다. 홀리거는 나이가 나이다보니 쉬는 구간에서는 약간 힘들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연주하면서 얼굴이 많이 붉어지기도 했지만, 연주하는 내내 압도적인 에너지와 카리스마를 뿜어낸 덕분에 실망은 전혀 하지 않았음. 오히려 저 정도로 악기를 온전히 지배할 수 있다는 건 어떤 것일지 경이로웠음. 서울시향의 반주도 그 정도면 무난. 물론 기대 수준이 낮고, 갈 길이 한참 멀긴 한데, 적어도 이게 무슨 곡을 연주하는 건지 갈피는 잡고 있었다고 느꼈다.

곡을 디테일하게 기억하지는 못하겠는데, 처음에 오보에-바이올린-첼로의 소름 돋게 아름다운 트랜지션, 바이올린과 하프가 섞여 독특한 음색을 얻은 부분 등이 인상적이었다. 오보에 솔로는 현대음악답게 글리산디, 트릴, 훅훅 꺼지는 듯한 바람 소리, 키 클릭 등을 비롯한 주법이 긴 패시지 안에 어지럽게 뒤섞여 있는데, 홀리거는 역시 명불허전 본좌답게 이 구간들을 아주 또렷하고 섬세하게 표현했다. 다만 윤이상의 곡은 라헨만처럼 소리 그 자체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곡이라기보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더 중점을 두고 있는 듯함. 특히 독주와 관현악의 갈등을 십분 이용하여 투쟁적인 상황을 그리고 있는 것이 돋보였다.

2부의 주인공은 시프 (쉬프?). 브람스의 2분 남짓한 짧은 피아노 소곡을 연주하고 바로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들어간다. 시프의 피아노가 들어갈 때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져서, 거의 무념무상으로 50분 동안 들은 것 같다. 1악장은 피아노와 관현악 모두 전형적인 브람스를 살짝 빗겨간 느낌. 그런데 오케스트라가 조금씩 헤매는 것도 상관 없이 그냥 바로 몰입이 되었음. 2악장과 3악장은 말할 것도 없고... 끝나니까 저절로 눈물이 줄줄 흐름. 이래서 대가가 연주하는 건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걸 제대로 느낀 하루 되겠다.

예상대로 망글 =_= 어떻게 이렇게 정리가 안 될 수가. 벅찬 감동 때문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갔다와서 후기를 쓸지 말지 주저하다가 결국 블로그에 쓸 떡밥이 없는 관계로 그냥 쓰기로 함. -_- 분량이 많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

인증. WB를 제대로 못 맞춰서 멍든 것처럼 푸르딩딩함.

장 시벨리우스

핀란디아
바이올린 협주곡 라단조
교향곡 2번 라장조

한경진, 바이올린 (2)
예술의전당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지휘: 김대진

그 동안은 거의 진지 빨고 연주하는 것만 듣고 작품 해설은 프로그램 사서 읽어야 하는 연주회만 갔다. 이 토요 콘서트는 클래식 음악에 약간의 관심만 있는 일반인이랑 바쁜 직장인들 대상으로 조금 더 친해져보라는 의도를 읽을 수 있는 시리즈임. 본격적으로 작품을 연주하기 전에 지휘자가 작품을 간단히 해설해주면서 시작하는데, 나도 평소에 공부하면서 음악을 듣는 편이 아닌지라 이렇게 떠먹여주는 것도 괜찮았다. 2부 직전에는 3음으로 된 주제를 파트에게 연주하게 시키면서 꽤 자세하게 설명했는데, 이런 해설은 감상에 늘 도움이 됨. 굿 잡 ㅇㅇ

핀란디아의 꽝꽝거리는 서주로 공연을 시작했음. 처음에는 그냥 나쁘지 않았는데 격렬하고 호전적인 부분이 지나고 음량이 잦아들어가면서 특히 목관이 거슬렸고, 연주가 너무 유리되어 무표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점이 아쉬웠다.

바이올린 솔로는 수원시향 악장이라는데, 기교적으로는 기대 이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여줬다. 다만 더 공격적으로 연주해야 할 부분들에서 다소 물렁하게 넘어가는 바람에 짜릿한 쾌감이 부족했으며, 2악장에서의 음색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워낙 난곡이기도 하고 큰 실수는 없었기에 그 정도면 솔로는 괜찮은 편이었음. 반면 오케스트라는 정말 악보를 그대로 읊는 듯 기계적인 반주를 해줬다. 그 이상의 감흥은 받지 못했기 때문에 더 자세한 감상은 별로 의미가 없는 듯.

교향곡 2번은 연주회의 중심이 되는 곡이라 그런지 더 연습을 많이 했다는 게 티가 났다. 연주를 하는 단원들도 1부에 비하면 조금이나마 더 확신에 차 있었던 것 같았고. 느린 악장에서는 역시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고, 차갑고 무표정인 느낌은 사실 별로 달라진 게 없었지만, 전체적인 인상을 개선하는 데는 조금 일조한 것 같음.

결론적으로 2만 원 값은 했고, 너무 떨어지지 않게 무난하긴 했으나 역시 무난... 에만 그쳤다는 것이 한계라고 본다. 특히 안타까웠던 것은 연주회 전체에 걸쳐 연주자들이 작품에 몰입하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김대진의 지휘를 처음 듣는고로 이게 단원들의 탓인지 지휘자의 성향이 이런 건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크누아 심포니의 브루크너를 들을 때 연주 내내 이런 의심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 극단적인 비교가 된다. 열정이 부족한 연주를 듣고 관객들이 클래식 음악에 친해지긴 어려울 텐데 말이지.

P.S. 관람 매너가 나쁘더라. 안다 박수는 기본이고 내가 앉은 A블록에서는 애가 속닥속닥거리기까지 해서 직원이 주의를 줬다.

할 말이 많지가 않아... 짧게 쓰려고 한다.

프로그램 책자랑 같이 인증. 저거 편집 귀찮았음.

바그너: 지크프리트 목가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가단조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마단조

발레리 소콜로프, 바이올린 (2)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 유라이 발추하

첫 곡 바그너의 '지크프리트 목가'는 미리 듣지도 않고 갔는데, 적당히 낭만적으로 미화된 시골 풍경을 떠올릴 수 있는 듣기 좋은 곡이었음. 초반에 살짝 끈다는 인상이 있었지만 처음 듣는 곡이기도 하니, 확신을 갖고 얘기는 못하겠다. 내가 활동하는 카페의 모 님께서 이 곡은 원래 현악이 솔로로 5명이서 연주하는 곡이라는 정보를 주셨는데, 궁금한 분이 있을까봐 말하자면, 그냥 평범하게 많이 나왔다.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이 오늘 프로그램 중 내가 제일 관심 있었던 작품. 발레리 소콜로프는 처음 듣는 이름인데 기대 이상으로 대단한 연주를 해주었다. 보잉은 깨끗하고 안정감이 있었고, 기교적으로 나무랄 데 없으면서 연주의 집중력도 아주 뛰어났다. 그리고 금상첨화로 협연자와 마주보는 곳에 내 자리가 있어서 작품을 놓고 교감하는 것 같은 망상까지 했음. 물론 이건 좋은 연주를 했으니 가능한 거지 지난 주의 그분이었다면 당장이라도 연주회장을 뛰쳐나가고 싶었을 듯.

2부 차이콥스키는 2악장 초반까지는 잘 들었는데 중간에 개인적인 일 때문에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집중력이 흐려지면서 곡이 끝날 때까지 내내 그 생각만 하다 돌아갔다. 비록 귀랑 뇌가 다른 곳에 있긴 했어도, 들어본 바로는 비교적 잘 했구나 싶다. 하지만 좋은 연주에도 집중을 못하는 걸 보면 역시 차이콥스키랑 나는 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혼란스럽게 여러 가지 느낌이 뒤섞인 기분으로 꿀꿀하게 연주회장을 나서야 했음.

지적하고 싶은 것은 관악 앙상블이 가끔씩 거슬릴 때가 있었다는 것. 미묘하게 안 맞거나 못 따라와서 살짝 흐트러진 인상을 주는 부분들이 조금 있었다. 내가 작품들에 그리 익숙하지도 않고 좋은 귀를 갖고 있는 게 아니다보니 정확하게 어디라고 찝어서 얘기는 못하겠다만. 큰 문제라고는 느끼지는 않았고, 전반적으로 흐름이 좋은 연주였다고 생각한다.

인증 ㅋ 프로그램은 별 필요 없을 것 같아 안 샀다.

막스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 사단조
안톤 브루크너: 교향곡 9번 라단조

이성주, 바이올린 (1)
크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 정치용

학기 동안 어깨에 짊어졌던 짐도 내려놨으니, 못 갔던 공연들을 엄청 몰아서 보겠다는 방학 계획을 가지고 간 첫번째 공연이다. 아마 빡세게 하면 일주일에 두 번도 보게 될 수도 있음. 이제 학기 중에는 수업이 너무 늦게 끝나서 주말 아니면 공연에 가기는 힘들거든. 완전 무리를 하지 않는 이상 말이지... 게다가 아르스 노바 I, II는 중간고사 기간이랑 너무 정확하게 겹치기까지 함. III, IV도 예매(대기)만 해놨지 어떻게 잘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공연은 사실 ... 걸린대로 간 셈이다. 이번주에 있는 것들 중에는 그나마 끌렸다. 티켓값도 싸고. 그리고 극심한 편식에서 벗어나서 소홀히해왔던 고전음악의 여러 장르에 조금씩이나마 관심을 가져봐야겠다는 생각을 전부터 해왔다. 아마 3년 전이었으면 1만 5천원이 아니라 그냥 5천원이었어도 이런 프로그램엔 관심 없어서, 그 정도 가지고 왔다갔다하기 귀찮아서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전에는 여러 이유로 피해왔던 걸 벗어나서 지금에야 행동에 옮기는 셈이다. 그리고 이건 사족인데 거의 완벽한 센터에 홀로 자리가 났던 것도 내 마음에 들었다. 공연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역시 중앙이 짱임. ㅋㅋㅋ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지휘자를 중심으로 쫙 뻗은 시야가 진짜 대박임.

브루흐 ... 이 곡을 전체로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래저래 할 말은 별로 없다. 잘 모르는 곡임. 오케스트라는 그냥저냥인데 협연자의 음색이 그다지 내 성에 안 차서 감상을 방해했다. 거친 소리도 많이 났고, 전반적으로 일관성이 부족하다 할까 아무튼 다듬어진 느낌이 아니었음. 그래도 꽤 잘하는 사람일텐데 내 귀가 이상한가 생각했다. 이런 의심이 계속 드는 가운데 연주를 즐길 수가 없잖겠어. 3악장까지 다 끝나고 환호하고 난리치는 사람도 있었는데 ... 역시 사람은 제각각 다 다른가보다. 이 정도까지만 하겠음.

처음에 갈 때부터 1부보다는 2부에 기대를 했다. 난 원래 브루크너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이 백 명씩 나와서 수십 분 동안 연주하는 거대 교향곡은 아무래도 내 취향의 장르는 아니기 때문에... 게다가 브루크너는 뭘 중점으로 들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반복이 너무너무너무너무 많아서 길고 지겹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실제로 들으니까 뭔가가 다르더라. 오케스트라가 쌓아가는 과정이 분명 그 자체로 아름다웠거든. 오케스트라(특히 금관)가 풀파워로 총주를 연주하면서 막 밀어붙이니까 거기에 또 마음이 동하더라. 그런 쪽에서 감동을 받을 거라고는 예상 못했는데. 눈물이 살짝 고일 뻔했다.

안 친해도 너무 안 친한 작곡가였던 -_- 브루크너에 한 발짝 정도는 다가갔다고 해도 좋을까. 아직은 확신이 없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면서 이 공연이 그런 의미를 갖는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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