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글 쓰고 있으면서도 기억이 계속 휘발되고 있음. 망한 리뷰가 될 것 같은 예감이...

인증은 일단 생략.

리하르트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
윤이상: 오보에/오보에 다모레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요하네스 브람스: 알붐블라트
요하네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라단조

하인츠 홀리거, 오보에/오보에 다모레
안드라스 시프, 피아노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 정명훈

2013년 9월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로 시작. 좋았음. 더 쓸 말이 없는 것 같다...?

윤이상의 오보에 협주곡은 오늘 처음 들어보는 작품. 비슷한(?) 클라리넷 협주곡은 들어본 적이 있는데 오보에 협주곡은 음반도 나와있지 않은 것 같고 유튜브에도 올라와있지 않아서 그냥 포기했다. 홀리거는 나이가 나이다보니 쉬는 구간에서는 약간 힘들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연주하면서 얼굴이 많이 붉어지기도 했지만, 연주하는 내내 압도적인 에너지와 카리스마를 뿜어낸 덕분에 실망은 전혀 하지 않았음. 오히려 저 정도로 악기를 온전히 지배할 수 있다는 건 어떤 것일지 경이로웠음. 서울시향의 반주도 그 정도면 무난. 물론 기대 수준이 낮고, 갈 길이 한참 멀긴 한데, 적어도 이게 무슨 곡을 연주하는 건지 갈피는 잡고 있었다고 느꼈다.

곡을 디테일하게 기억하지는 못하겠는데, 처음에 오보에-바이올린-첼로의 소름 돋게 아름다운 트랜지션, 바이올린과 하프가 섞여 독특한 음색을 얻은 부분 등이 인상적이었다. 오보에 솔로는 현대음악답게 글리산디, 트릴, 훅훅 꺼지는 듯한 바람 소리, 키 클릭 등을 비롯한 주법이 긴 패시지 안에 어지럽게 뒤섞여 있는데, 홀리거는 역시 명불허전 본좌답게 이 구간들을 아주 또렷하고 섬세하게 표현했다. 다만 윤이상의 곡은 라헨만처럼 소리 그 자체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곡이라기보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더 중점을 두고 있는 듯함. 특히 독주와 관현악의 갈등을 십분 이용하여 투쟁적인 상황을 그리고 있는 것이 돋보였다.

2부의 주인공은 시프 (쉬프?). 브람스의 2분 남짓한 짧은 피아노 소곡을 연주하고 바로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들어간다. 시프의 피아노가 들어갈 때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져서, 거의 무념무상으로 50분 동안 들은 것 같다. 1악장은 피아노와 관현악 모두 전형적인 브람스를 살짝 빗겨간 느낌. 그런데 오케스트라가 조금씩 헤매는 것도 상관 없이 그냥 바로 몰입이 되었음. 2악장과 3악장은 말할 것도 없고... 끝나니까 저절로 눈물이 줄줄 흐름. 이래서 대가가 연주하는 건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걸 제대로 느낀 하루 되겠다.

예상대로 망글 =_= 어떻게 이렇게 정리가 안 될 수가. 벅찬 감동 때문이라고 생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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