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 판 이메르세일

2013. 8. 26. 02:04

부지런해지려고 했지만 ... 역시나. 그렇다고 그 동안 아무 것도 안 한 건 아니고, 이진상의 피아노 리사이틀도 보러 갔음. 프로그램이 좋았고, 괜찮은 연주로 들을 수 있어서 만족했다는 것 외에 별달리 할 말이 없어서 굳이 후기는 쓰지 않았다. 그에 말을 덧붙이기에는 내게 워낙 피아노는 거리가 있는 악기라서. 앙코르로 뭘 연주했는지도 모르겠고.

이제 본론.

클로드 드뷔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바다
관현악을 위한 영상들(이미지들)

아니마 에테르나 브뤼허
지휘: 요스 판 이메르세일

근대의 음악을 동시대 악기로 연주한다는 개념은 딱히 새로운 것은 아니고 동 악단, 지휘자가 이미 시도도 했기 때문에 그쪽 덕후들에게는 그다지 놀랍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리스닝 경험이 일천한 나에게는 그것과 별개로 눈이 확 뜨이는 경험이었다. 대충 검색을 해보니 거트 스트링, 당대의 프랑스제 관악기를 썼다는 것을 가디언 리뷰에서 읽을 수 있었다.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산뜻하고 투명한 음색은 당연히 기존의 연주와는 이질적인 표현을 만드는데, 특히 목관의 약간 날카롭고 다듬어지지 않은 음색이나, 여리게 연주하는 부분에서도 웅얼대지 않고 '멜로디'를 그리는 현을 특히 주목하게 된다. 이런 연주가 흔히 그렇듯이 현대 오케스트라의 양감은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대신 창을 완전히 젖혀놓고 채도 높은 풍경을 바라보는 듯 생생하다는 감상을 가지게 한다.

세 작품은 작곡 순서 순으로 실려있다. 비현실적이고 모호한 분위기의 작품인 '전주곡'부터 묘사적이고 회화적인 인상을 남기는 '영상들'까지 작풍의 변화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구성이다. 나는 굳이 순서대로 듣는 편은 아니고 개별 작품을 따로 듣거나 혹은 아무렇게나 섞어서 들을 때가 많기는 하지만.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의 해석은 그 꿈결 같은 나른함을 살리는 데 집중되어 있다. 비록 달콤하고 아름다운 사운드를 듣는 것 그 자체로 매력이 넘치기는 하지만, 연주 전체를 들었을 때 조금 더 긴장감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또한 다른 연주들보다 확실히 느린 템포는 약간 일부러 끄는 듯이 작위적이어서, 청량감 있는 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다행히도 바로 다음 곡 '바다'에서 그의 밀고 당김에서 느껴지는 유연함은 전주곡에서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완급의 조절은 정말로 물이 일렁이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특히 2악장 '파도의 유희'의 뒷부분을 정말 좋아한다.

관현악을 위한 '영상들'에서 지휘자는 일반적인 순서(지그-이베리아-봄의 론도 순)를 따르지 않고 '봄의 론도'를 첫번째로 연주하고, '이베리아'를 마지막으로 끌었다. 그는 내지에서 이 순서는 앙드레 카플레가 작곡가 사후인 1922년에 연주한 것을 따른 것이며, 드뷔시의 제안을 따른 것인지 카플레 본인의 결정인지는 모르겠다고 썼다. 그리고 지휘자 본인이 느끼기에 음악적으로 가장 적절한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영상들'의 연주는 이 음반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특히 밝고 깨끗한 관현악의 질감은 살아 움직이는 듯 이리저리 튀는 악상과 탁월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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