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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6. 22. 17:05

여기는 음반과 공연 리뷰들만 남겨놓고 문 닫습니다.

왜 이렇게 쓰기가 힘들지 =_= 쓰기 시작하면 쭉쭉 나가야 하는데... 잘 안 됨.

즉흥연주 피아노, 바리톤, 16명의 연주자를 위한 Tongue of the Invisible (2010–11)

Uri Caine 피아노
Omar Ebrahim 바리톤
Ensemble musikFabrik
지휘: André de Ridder

첼로 독주곡 Invisibility (2009)로 이 작곡가의 음악을 처음 접하고 꽤나 좋은 인상을 받았다. 이제까지는 유튜브 동영상이나 라디오 녹음으로나 접하고 있던 차에 몇 달 전 나온 이 음반을 사서 열심히 듣고 있다. 관현악곡을 모은 음반이 하나 더 나온다고 하니 그것도 곧 사게 되지 않을까 싶음.

림의 작품은 지금까지 (내가 들어본 바로는) 주로 중국이나 아보리진 문화를 바탕으로 한 것들이 많았다. Invisibility도 아보리진 예술에서 영감을 받아 초자연의 보이지 않는 힘을 표현한 곡. 물론 이런 다양한 시도들은 서구 아방가르드 예술 음악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작품은 중세 페르시아의 유명한 시인 하피즈의 시를 텍스트로 하였는데 내게는 이전 시도의 연장에 더 가깝다고 보여짐. 작품의 제목도 하피즈의 별명에서 따온 것이다.

이 작품의 중심에 놓여 있는 아이디어는 림의 표현을 빌려서 "고정된" 것과 "열린" 것의 공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미 구체적으로 악보에 쓰여진 것과 연주자가 즉흥으로 연주할 수 있는 것(물론 일정한 제약 하에서)으로 설명된다. 6악장은 전체가 피아노가 예전 악장들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즉흥연주를 하도록 되어 있으며, 또한 5악장의 오보에 솔로는 정해진 구간들 여러 개를 놓고 연주자가 직접 순서를 정해서 연주하도록 하고 있다.

1악장에서 아직 바리톤이 등장하기 전에는 타악기, 비올라, 오보에가 주인공이 되는 기악 연주로 시작되는데, 이렇게 화려한 기악 선율들은 작품 내내 등장해서 마치 전주곡과 같은 역할을 한다. 드럼 패턴으로 연주되는 제의를 연상하게 하는 최면적 리듬과 기악 연주의 각종 장식음들은 작품 곳곳에 위치한 클라이막스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음악을 이끄는 핵심은 당연히 바리톤의 가창 전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그에게는 곡 내내 극한의 격정을 이끌어내어 텍스트를 구현할 것이 요구되고 있으며, 이것은 곡이 진행되면서 더 과감해지고 격렬하게 떨리는 목소리를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50분이 넘는 대규모에 워낙 다채로운 모습을 하고 있는 작품이기에 다소 몰입도가 떨어지는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러나 최근 들어본 음악 중 이렇게 축적되는 구조를 통한 감흥을 잘 살린 예시도 드물다. 편하게 들을 수는 없으나, 그에 걸맞는 경험을 가져다주는 작품으로 인상 깊게 들었다.

정명훈의 영웅의 생애

2014. 1. 11. 23:13

트윗을 해도 될 정도의 길이가 될 듯.

루트비히 판 베토벤: 레오노레 서곡 제3번
진은숙: 생황과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Šu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교향시 '영웅의 생애'

우웨이, 생황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 정명훈

2014년 1월 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레오노레 서곡은 처음에 조금씩 실수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다음부터는 괜찮았던 기억. 현이 마음에 들었음.

진은숙의 생황 협주곡은 워낙 오래 전에 라디오로 한두 번 들은 작품이라서 희미한 기억과 비교대조해보자는 마음으로 들었는데, 거기서 듣고 본 게 '생황이 이렇게 생긴 악기구나' 그게 다였음. 에휴. 처음 생황의 독주로 시작해서 현을 시작으로 악기들이 차츰차츰 더해지는 초반부터 아무런 감흥이 없었고, 2층에 위치한 현악기들이 하모닉스로 허접하게 마무리... 작품 자체가 얌전한 모범생 같아서 더 마음에 안 들었다. 독주 악기의 다양한 기교와 독주, 오케스트라의 밸런스 같은 것은 베테랑 작곡가답게 괜찮았으나, 진은숙 정도의 작곡가라면 그보다 더 많이 들려줘야 하지 않을까. 이 작품은 너무 진부한 탓에 뭔가 맛을 보고 싶어도 볼 게 없었다.

독주자의 앙코르는 성의는 감사하지만 굳이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영웅의 생애'는 그날 처음 들은 곡이라서 연주에 대해서 이리저리 말할 것은 없다. 곡 자체는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분명해서 지루하지 않게 들을 수 있었고 트럼펫 주자들이 퇴장했다가 무대 뒤에서 연주하는 장치도 효과적이었음. 음색부터가 내 취향에는 약간 맞지 않는 건지 루세브의 솔로는 살짝 느끼했다는 생각이 들고.

지금 아니면 당분간 블로그를 만질 시간이 없음. 여차하면 이 글 하나로 12월까지 버텨야 할지도...

피에르 불레즈: 관현악을 위한 노타시옹
안톤 브루크너: 교향곡 제7번 마장조

베를리너 필하모니커
지휘: 사이먼 래틀

2013년 11월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원래 베를린 필은 예정에 없었는데 어떤 분의 도움을 받아 기회를 얻어 갈 수 있었다. 공연 일주일 전만 해도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런 행운이 올 줄이야...

재작년 호소카와 도시오의 호른 협주곡을 올렸듯 이번에도 현대음악 작품을 한 곡 포함했다. 불레즈의 노타시옹과 브루크너 7번의 조합은 굳이 국외 투어가 아니더라도 만나기 어려운 구성일텐데, 아직 청중 모두가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라도 베를린 필의 지향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담으로 익숙하지 않은 작품들일테도 빈 자리가 별로 없이 차는 걸 보고 악단의 이름값을 실감했음. 초대권도 별로 없고 거의 대부분이 유료관객이라는데.

불레즈는 워낙 완벽주의자이기도 하고, 작품 하나하나가 버릴 것이 없을 테지만 '노타시옹'은 불레즈 작품 중에서는 덜 선호하는 작품이었다. 효과가 뛰어나서 자주 연주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들으면서 감동을 받았다거나 엄청나게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한 적은 사실 없는데 실연으로 처음 들으며 이 작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걸 제대로 확인하고 왔다. 그 음향은 가서 듣지 않으면 도저히 뭔지 알 수 없었을 것 같음. 합창석에 앉아서 들었기 때문에 그 섬세함 그대로를 즐기기는 조금 어려웠으나 그래도 충분히 만족... 래틀의 해석도 꽤나 흥미로웠는데 이리저리 돌아가는 일이 없이 아주 직설적이고 감각적이었음. 음악의 포인트를 딱딱 찝어주면서 청중에게 "이깟 거 별거 아님 그냥 따라오셈" 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베를린 필의 연주야 두 말하면 섭하겠지만 특히 내게는 피아니시모가 인상적이었다. 이제까지 내가 들어본 어느 악단도 들려준 적 없는 그 또렷또렷함이라니... 아예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것 같았달까. 홀을 쩌렁쩌렁하게 울릴 때도 그냥 크기만 한 게 아니라 조금의 빈틈도 없이 꽉 찬 소리... 마치 김연아의 점프를 보는 듯한 감동이었음.

브루크너에 대해선 워낙 아는 게 없기 때문에; 말을 늘어놓기가 어렵기는 한데 별로 익숙하지 않은 곡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괜찮은 연주였던 것 같음. 마치 곡을 쭉 펼쳐서 보여주는 것 같았음. 악상의 흐름이 길게 이어지는데 막힘 없이 자연스럽게 나아가네. 오케스트라 전체가 그 흐름을 타면서 서서히 감정이 끌어올려지면서 느낀 그 순간순간의 감동을 잊기 힘들 것 같다. 3악장까지 만족스럽게 듣다가 4악장에 가서는 지쳐서 음악이 잘 안 들리긴 했지만.

베를린 필이 다녀가기만 하면 온통 내가 아는 클음 커뮤니티는 난리가 나던데 그 정도로 극딜당할 연주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음.

비톨트 루토스와프스키: 자허 변주곡
(바로 이어서) 마그누스 린드베리: 스트로크
쿠르타그 저르지: 사인들, 게임들과 메시지들
(바로 이어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첼로 모음곡 제3번 BWV 1009
코다이 졸탄: 무반주 첼로를 위한 소나타

장 기엔 케라스, 첼로

2013년 11월 13일
LG아트센터

처음에는 프로그램이 없는데다 예습도 안 하고 가서 (게을러서 보통 안 함) 처음 두 작품을 붙여서 연주하는지도 몰랐다. 프로그램을 사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자허 변주곡이 굉장히 짧은 곡이었다는 걸 깨달음. 들으면서 대충 느낀 2악장으로 나뉘는 게 아니었어 ㅋㅋㅋ 들으면서도 2악장이 더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만큼 린드베리의 '스트로크'가 괜찮은 작품이었음. 현대음악 독주곡답게 다양한 주법들이 망라되어 있는데, 사실 거기에 치우치지 않고 이미지를 형상화하는데 몰두한 듯하다는 생각을 (나중에 다시 들으면서) 함. 잠깐 쉬고 나서 쿠르타그를 연주했는데 그 특유의 압축된 표현이 드러나는 작품이었음. 케라스는 아주 매끄럽게 연주했지만 음악 자체는 약간 투박하면서도 진중했던 것 같고. 바로 바흐를 이어서 연주했는데 신기하다 싶을 만큼 잘 어울리더라.

케라스의 바흐는 음반으로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때와는 굉장히 다르게 다가왔음. 특히 귀족적이면서도 뭔가 붕 뜬 음색은 음악에 굉장히 특이한 캐릭터를 부여하고 있었음. 루바토가 약간 적응이 안 될 때가 있었다는 걸 빼면 아주 좋은 연주였음.

코다이의 소나타를 2부에 연주했는데 물론 대강 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도 장대한 곡이었다. ㄷㄷ 첼로 독주곡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곡이었는데 연주하는 것만큼이나 듣는 것도 체력을 요하는 곡이더라. 같이 가신 분은 첼로 하나에서 우주를 느낄 수 있는 곡이라면서 흥분하셨다 ㅎㅎ 들으면서 웃었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닌 듯.

앙코르로 바흐 모음곡 1번 일부와 뒤티외의 Trois strophes sur le nom de Sacher를 연주함. 바흐 모음곡은 그냥저냥이었는데 뒤티외에 충격을 받음. 정명훈의 협주곡 음반에 끼어있는 이 곡을 들을땐 이렇게 훌륭한 작품인 줄 몰랐는데 다시 한 번 클래스가 어떤 건지 확인했다.

이틀 연속으로 나다니느라 고생. 이제 시험 끝날 때까지 공연 못 다닐 걸 생각하니 조금 슬퍼...

지금 후기를 작성한다는 게 별로 의미는 없겠지만 그냥 블로그에 글을 채워야 할 것 같기 때문에 쓰는 간단 후기임. 12시 전까지 다 써서 10월에 글을 두 개 썼다는 걸 남기는 것이 목표.

줄리안 앤더슨: 기도서
앙리 뒤티외: 메타볼
클로드 드뷔시: 유희
트리스탕 뮈라이: 세계의 탈주술화

프랑수아-프레데릭 기, 피아노 (4)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 티에리 피셔

2013년 10월 1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줄리안 앤더슨의 '기도서'는 효과가 좋은 작품이었다. 두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데 같은 음계로 시작하지만 사소한 부분이 틀어지면서 전혀 다르게 전개된다. 암전된 상태에서 전자음이 온 홀을 뒤덮는 부분은 역시 대중음악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면서도 현대음악의 매력을 잃지 않은 것이 인상적. 단지 전자음악이 어쿠스틱 속에 조금 더 매끄럽게 통합되어 표현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약간 gimmick의 냄새가 났다는 게 단점. 특히 레코드판 소음은 왜 넣었는지 모르겠음. 작곡가가 설정해 놓은 의미가 있기야 하겠지만.

메타볼은 역시 좋았음. 변주곡과 같은 작품이라고 하던데 사전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느낌만 초반에 받았을 뿐 머리를 열심히 굴려가며 듣지는 못했다. 서울시향의 연주도 그만하면 만족했다.

드뷔시도 역시 좋았음. 이 작품에서는 드뷔시의 물 흐르듯한 매력이 극대화되고 있는데 이러한 유동성은 이후의 현대음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카더라.

뮈라이의 작풍이 2000년대 이후로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번에 들었던 Les sept Paroles도 그렇고 스펙트랄한 음향의 역할은 줄어들고 음색의 변화가 더욱 제한적이고 미묘해졌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음. 곡의 전개 부분에서는 그다지 나무랄 데가 없고, 관현악을 다루는 솜씨도 훌륭했지만... 결론적으로는 다소 실망이었다. 난 더 직접적인 걸 원한다는 걸 생생하게 느낌.

앙코르에서 드뷔시 전주곡 중 하나를 연주했는데 (제목 기억 안남) 훌륭했다.

15분만에 작성완료!

정신 없는 통에 블로그를 본의 아니게 방치해 두었다. 바쁜 것보단 게으른 탓이 더 크겠지만. 사실 그동안 쓰잘데 없는 타이쿤류 모바일 게임이나 하면서 놀았습니다.

각설하고. 지금 뮈라이 작품 녹음을 들으면서 이 포스트를 쓰고 있음. 방송 녹음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도움이 되는 날이 오긴 오는가보다.

죄르지 리게티: 선율들
파람 비르: 하야그리바
조현화: 마법사의 제자
트리스탕 뮈라이: 모래언덕의 정령
올리비에 메시앙: 천상의 도시의 색채

프랑수아-프레데릭 기, 피아노 (5)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 티에리 피셔

2013년 10월 9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리게티의 Melodien은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 중 하나다. 60년대 초의 Atmosphères의 우중충한 잿빛 사운드에서 점차 벗어나서 리게티의 음악은 조금씩 더 다채로운 빛깔을 띠게 됐다. 이전의 그 빽빽한 숲 같은 미크로폴리포니가 여기서는 조금 듬성듬성하게 풀려서 악기가 그리는 선율들이 조금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각 성부는 더 이상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뭉쳐지지 않고 흩어지거나 포개어지기만 할 뿐이다. 실연으로 이 곡을 들으니까 그 섬세하게 얽혀 있는 느낌이 제대로 살아있었다. 다만 연주의 수준은 살짝 아쉬웠다. 어제 전체 연주를 들으면서 딱 한 번 이 생각을 했다.

그 다음으로 연주된 작품은 처음 듣는 작곡가가 쓴 것이어서 약간 더 긴장을 하고 들었다. 연주회 전 진은숙 선생이 각 섹션의 색감을 이야기도 해주었는데; 내게는 별로 와닿지는 않았음. 현대음악의 경우에는 작곡가의 어법에 익숙해진 뒤에야 알 수 있는 부분도 있으므로 섣불리 뭐라고 하지는 않겠다. 작품을 들으면서 바로 전 리게티의 영향도 받았고, 버트위슬 생각도 났다. 기회가 된다면 더 들어보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음.

아르스 노바의 실내악 연주회에는 꼭 한국 작곡가의 작품이 하나씩 들어가는데, 다음 '마법사의 제자'는 작곡가 조현화가 직접 자기 작품을 설명하러 나왔다. 그는 작곡 기법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들으면 음악이 알아서 설명해줄 거라고 했고, 그 말 그대로였다. 작품의 질감이 전체적으로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는 가볍고, 반복되는 짧은 리듬 등으로 접근성을 높이려는 시도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미지도 꽤나 명확하게 전달되었고. 나는 그 폴 뒤카의 작품을 들어본 적은 없고 리게티의 피아노 연습곡 중 동일 제목의 작품은 알고 있는데, 두 작품 간에도 유사성이 어느 정도 느껴져서 재미있더라. 작품의 발상 자체는 작년 신동훈의 작품이 더 신선하다고 생각하지만.

2부는 프랑스 작곡가들의 두 작품이 연주가 되었다. 뮈라이의 작품은 단순히 스펙트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화성과 배음과 음색의 탐구에만 그치지 않고 풍부한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인상주의 음악을 연상하게 하는 묘사적인 제목을 쓰고 있지만 작품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오히려 건조함이 아닌 활발함이었다. 라이브 전자음이 아닌 샘플러를 쓰는 곡이라고 들었는데 효과가 아주 생생했다. 이래서 실연을 많이 들으러 가야 하는 듯.

마지막 메시앙의 Couleurs de la cité céleste가 진정한 하이라이트였다. 한 마디로 압도적이었다. 공기가 달라진다는 게 이런 거라고 느낄만큼. 관악의 유니슨이 제대로 꽂힐 때는 머리가 곤두서는 것처럼 짜릿하더라. 음 피아노 아저씨가 페달을 조금만 덜 썼으면 했을 때도 있었는데, 여기까지 바라는 건 너무 배가 부른 것이겠고. 메시앙 고유의 '색채'를 띤 화음, 금관의 묵직한 음색과 끝없이 뻗어 마치 정지된 듯한 리듬까지 정말 환상적으로 아름다웠음.

이제껏 아르스 노바를 그렇게까지 열심히 다녔던 것은 아니라고 해도, 나름대로 기회가 닿을 때마다 찾으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항상 만족했던 것은 아닌데 이번에는 이제껏 했던 것보다 조금 더 발전한 것 같다. 연주의 집중력도 더 좋아졌고 현대음악으로도 청중과의 교감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이 보여서 박수를 쳐주고 싶다.

브루노 만토바니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위한 Huit moments musicaux (2008)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Cinq pièces pour Paul Klee (2007)
피아노를 위한 Suonare (2006)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D’une seule voix (2007)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All’ungarese (2009)

Trio Wanderer
Claire Désert 피아노

피아노 삼중주곡 Huit moments musicaux의 제목을 들으면 슈베르트의 유명한 피아노 소곡집 '악흥의 순간들'을 바로 떠올리게 된다. 슈베르트를 위한 오마주라고 읽히는데, 시대의 간격이 워낙 커서 그런지 이 곡을 듣기만 해서는 슈베르트 음악의 자취를 읽기는 조금 힘든 것 같긴 함. 내지를 읽어보니 슈베르트의 이름에서 따온 동기 F-A-Es-C-H를 사용했다고. 생동감 넘치는 피아노와 현악기가 서로 부딪히고 계속 역할을 바꾸면서 곡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아이디어가 특출난 것은 아니지만 완급 조절이 좋고 섬세하게 짜여져 있는 것은 마음에 들었다.

20세기 작곡가들에서 영감을 얻은 곡들에서는 조금 더 유사성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프랑스 선배들 특히 라벨과 메시앙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 피아노 독주곡 Suonare와 버르토크, 그 중에서도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을 생각하며 썼다는 All’ungarese인데, 특히 Suonare에서는 화려한 기교뿐만 아니라 곡이 진행하면서 점차적으로 소리의 레퍼런스가 옮겨가는 데서 듣는 재미가 있었음. 아무래도 약간 진부한 과거 음악의 소리를 들려준다는 건 조금 아쉽지만.

처음 기대하던 것보다는 꽤 가벼운 작품들이다보니 몇 번 돌리다 보면 수월하게 들을 수가 있었다. 작곡가는 복잡한 리듬과 선율을 그리면서도 낭만성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아주 뛰어나다 싶은 작품은 없긴 한데 작품 각자 개성이 뚜렷하고 앨범 구성도 매끄러워서 듣기가 좋다. 앞으로는 다른 거 듣다가 조금 지칠 때 듣게 될 것 같음.

지금 글 쓰고 있으면서도 기억이 계속 휘발되고 있음. 망한 리뷰가 될 것 같은 예감이...

인증은 일단 생략.

리하르트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
윤이상: 오보에/오보에 다모레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요하네스 브람스: 알붐블라트
요하네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라단조

하인츠 홀리거, 오보에/오보에 다모레
안드라스 시프, 피아노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 정명훈

2013년 9월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로 시작. 좋았음. 더 쓸 말이 없는 것 같다...?

윤이상의 오보에 협주곡은 오늘 처음 들어보는 작품. 비슷한(?) 클라리넷 협주곡은 들어본 적이 있는데 오보에 협주곡은 음반도 나와있지 않은 것 같고 유튜브에도 올라와있지 않아서 그냥 포기했다. 홀리거는 나이가 나이다보니 쉬는 구간에서는 약간 힘들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연주하면서 얼굴이 많이 붉어지기도 했지만, 연주하는 내내 압도적인 에너지와 카리스마를 뿜어낸 덕분에 실망은 전혀 하지 않았음. 오히려 저 정도로 악기를 온전히 지배할 수 있다는 건 어떤 것일지 경이로웠음. 서울시향의 반주도 그 정도면 무난. 물론 기대 수준이 낮고, 갈 길이 한참 멀긴 한데, 적어도 이게 무슨 곡을 연주하는 건지 갈피는 잡고 있었다고 느꼈다.

곡을 디테일하게 기억하지는 못하겠는데, 처음에 오보에-바이올린-첼로의 소름 돋게 아름다운 트랜지션, 바이올린과 하프가 섞여 독특한 음색을 얻은 부분 등이 인상적이었다. 오보에 솔로는 현대음악답게 글리산디, 트릴, 훅훅 꺼지는 듯한 바람 소리, 키 클릭 등을 비롯한 주법이 긴 패시지 안에 어지럽게 뒤섞여 있는데, 홀리거는 역시 명불허전 본좌답게 이 구간들을 아주 또렷하고 섬세하게 표현했다. 다만 윤이상의 곡은 라헨만처럼 소리 그 자체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곡이라기보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더 중점을 두고 있는 듯함. 특히 독주와 관현악의 갈등을 십분 이용하여 투쟁적인 상황을 그리고 있는 것이 돋보였다.

2부의 주인공은 시프 (쉬프?). 브람스의 2분 남짓한 짧은 피아노 소곡을 연주하고 바로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들어간다. 시프의 피아노가 들어갈 때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져서, 거의 무념무상으로 50분 동안 들은 것 같다. 1악장은 피아노와 관현악 모두 전형적인 브람스를 살짝 빗겨간 느낌. 그런데 오케스트라가 조금씩 헤매는 것도 상관 없이 그냥 바로 몰입이 되었음. 2악장과 3악장은 말할 것도 없고... 끝나니까 저절로 눈물이 줄줄 흐름. 이래서 대가가 연주하는 건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걸 제대로 느낀 하루 되겠다.

예상대로 망글 =_= 어떻게 이렇게 정리가 안 될 수가. 벅찬 감동 때문이라고 생각해주세요...

드뷔시, 판 이메르세일

2013. 8. 26. 02:04

부지런해지려고 했지만 ... 역시나. 그렇다고 그 동안 아무 것도 안 한 건 아니고, 이진상의 피아노 리사이틀도 보러 갔음. 프로그램이 좋았고, 괜찮은 연주로 들을 수 있어서 만족했다는 것 외에 별달리 할 말이 없어서 굳이 후기는 쓰지 않았다. 그에 말을 덧붙이기에는 내게 워낙 피아노는 거리가 있는 악기라서. 앙코르로 뭘 연주했는지도 모르겠고.

이제 본론.

클로드 드뷔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바다
관현악을 위한 영상들(이미지들)

아니마 에테르나 브뤼허
지휘: 요스 판 이메르세일

근대의 음악을 동시대 악기로 연주한다는 개념은 딱히 새로운 것은 아니고 동 악단, 지휘자가 이미 시도도 했기 때문에 그쪽 덕후들에게는 그다지 놀랍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리스닝 경험이 일천한 나에게는 그것과 별개로 눈이 확 뜨이는 경험이었다. 대충 검색을 해보니 거트 스트링, 당대의 프랑스제 관악기를 썼다는 것을 가디언 리뷰에서 읽을 수 있었다.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산뜻하고 투명한 음색은 당연히 기존의 연주와는 이질적인 표현을 만드는데, 특히 목관의 약간 날카롭고 다듬어지지 않은 음색이나, 여리게 연주하는 부분에서도 웅얼대지 않고 '멜로디'를 그리는 현을 특히 주목하게 된다. 이런 연주가 흔히 그렇듯이 현대 오케스트라의 양감은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대신 창을 완전히 젖혀놓고 채도 높은 풍경을 바라보는 듯 생생하다는 감상을 가지게 한다.

세 작품은 작곡 순서 순으로 실려있다. 비현실적이고 모호한 분위기의 작품인 '전주곡'부터 묘사적이고 회화적인 인상을 남기는 '영상들'까지 작풍의 변화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구성이다. 나는 굳이 순서대로 듣는 편은 아니고 개별 작품을 따로 듣거나 혹은 아무렇게나 섞어서 들을 때가 많기는 하지만.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의 해석은 그 꿈결 같은 나른함을 살리는 데 집중되어 있다. 비록 달콤하고 아름다운 사운드를 듣는 것 그 자체로 매력이 넘치기는 하지만, 연주 전체를 들었을 때 조금 더 긴장감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또한 다른 연주들보다 확실히 느린 템포는 약간 일부러 끄는 듯이 작위적이어서, 청량감 있는 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다행히도 바로 다음 곡 '바다'에서 그의 밀고 당김에서 느껴지는 유연함은 전주곡에서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완급의 조절은 정말로 물이 일렁이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특히 2악장 '파도의 유희'의 뒷부분을 정말 좋아한다.

관현악을 위한 '영상들'에서 지휘자는 일반적인 순서(지그-이베리아-봄의 론도 순)를 따르지 않고 '봄의 론도'를 첫번째로 연주하고, '이베리아'를 마지막으로 끌었다. 그는 내지에서 이 순서는 앙드레 카플레가 작곡가 사후인 1922년에 연주한 것을 따른 것이며, 드뷔시의 제안을 따른 것인지 카플레 본인의 결정인지는 모르겠다고 썼다. 그리고 지휘자 본인이 느끼기에 음악적으로 가장 적절한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영상들'의 연주는 이 음반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특히 밝고 깨끗한 관현악의 질감은 살아 움직이는 듯 이리저리 튀는 악상과 탁월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갔다와서 후기를 쓸지 말지 주저하다가 결국 블로그에 쓸 떡밥이 없는 관계로 그냥 쓰기로 함. -_- 분량이 많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

인증. WB를 제대로 못 맞춰서 멍든 것처럼 푸르딩딩함.

장 시벨리우스

핀란디아
바이올린 협주곡 라단조
교향곡 2번 라장조

한경진, 바이올린 (2)
예술의전당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지휘: 김대진

그 동안은 거의 진지 빨고 연주하는 것만 듣고 작품 해설은 프로그램 사서 읽어야 하는 연주회만 갔다. 이 토요 콘서트는 클래식 음악에 약간의 관심만 있는 일반인이랑 바쁜 직장인들 대상으로 조금 더 친해져보라는 의도를 읽을 수 있는 시리즈임. 본격적으로 작품을 연주하기 전에 지휘자가 작품을 간단히 해설해주면서 시작하는데, 나도 평소에 공부하면서 음악을 듣는 편이 아닌지라 이렇게 떠먹여주는 것도 괜찮았다. 2부 직전에는 3음으로 된 주제를 파트에게 연주하게 시키면서 꽤 자세하게 설명했는데, 이런 해설은 감상에 늘 도움이 됨. 굿 잡 ㅇㅇ

핀란디아의 꽝꽝거리는 서주로 공연을 시작했음. 처음에는 그냥 나쁘지 않았는데 격렬하고 호전적인 부분이 지나고 음량이 잦아들어가면서 특히 목관이 거슬렸고, 연주가 너무 유리되어 무표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점이 아쉬웠다.

바이올린 솔로는 수원시향 악장이라는데, 기교적으로는 기대 이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여줬다. 다만 더 공격적으로 연주해야 할 부분들에서 다소 물렁하게 넘어가는 바람에 짜릿한 쾌감이 부족했으며, 2악장에서의 음색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워낙 난곡이기도 하고 큰 실수는 없었기에 그 정도면 솔로는 괜찮은 편이었음. 반면 오케스트라는 정말 악보를 그대로 읊는 듯 기계적인 반주를 해줬다. 그 이상의 감흥은 받지 못했기 때문에 더 자세한 감상은 별로 의미가 없는 듯.

교향곡 2번은 연주회의 중심이 되는 곡이라 그런지 더 연습을 많이 했다는 게 티가 났다. 연주를 하는 단원들도 1부에 비하면 조금이나마 더 확신에 차 있었던 것 같았고. 느린 악장에서는 역시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고, 차갑고 무표정인 느낌은 사실 별로 달라진 게 없었지만, 전체적인 인상을 개선하는 데는 조금 일조한 것 같음.

결론적으로 2만 원 값은 했고, 너무 떨어지지 않게 무난하긴 했으나 역시 무난... 에만 그쳤다는 것이 한계라고 본다. 특히 안타까웠던 것은 연주회 전체에 걸쳐 연주자들이 작품에 몰입하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김대진의 지휘를 처음 듣는고로 이게 단원들의 탓인지 지휘자의 성향이 이런 건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크누아 심포니의 브루크너를 들을 때 연주 내내 이런 의심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 극단적인 비교가 된다. 열정이 부족한 연주를 듣고 관객들이 클래식 음악에 친해지긴 어려울 텐데 말이지.

P.S. 관람 매너가 나쁘더라. 안다 박수는 기본이고 내가 앉은 A블록에서는 애가 속닥속닥거리기까지 해서 직원이 주의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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