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니면 당분간 블로그를 만질 시간이 없음. 여차하면 이 글 하나로 12월까지 버텨야 할지도...

피에르 불레즈: 관현악을 위한 노타시옹
안톤 브루크너: 교향곡 제7번 마장조

베를리너 필하모니커
지휘: 사이먼 래틀

2013년 11월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원래 베를린 필은 예정에 없었는데 어떤 분의 도움을 받아 기회를 얻어 갈 수 있었다. 공연 일주일 전만 해도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런 행운이 올 줄이야...

재작년 호소카와 도시오의 호른 협주곡을 올렸듯 이번에도 현대음악 작품을 한 곡 포함했다. 불레즈의 노타시옹과 브루크너 7번의 조합은 굳이 국외 투어가 아니더라도 만나기 어려운 구성일텐데, 아직 청중 모두가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라도 베를린 필의 지향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담으로 익숙하지 않은 작품들일테도 빈 자리가 별로 없이 차는 걸 보고 악단의 이름값을 실감했음. 초대권도 별로 없고 거의 대부분이 유료관객이라는데.

불레즈는 워낙 완벽주의자이기도 하고, 작품 하나하나가 버릴 것이 없을 테지만 '노타시옹'은 불레즈 작품 중에서는 덜 선호하는 작품이었다. 효과가 뛰어나서 자주 연주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들으면서 감동을 받았다거나 엄청나게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한 적은 사실 없는데 실연으로 처음 들으며 이 작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걸 제대로 확인하고 왔다. 그 음향은 가서 듣지 않으면 도저히 뭔지 알 수 없었을 것 같음. 합창석에 앉아서 들었기 때문에 그 섬세함 그대로를 즐기기는 조금 어려웠으나 그래도 충분히 만족... 래틀의 해석도 꽤나 흥미로웠는데 이리저리 돌아가는 일이 없이 아주 직설적이고 감각적이었음. 음악의 포인트를 딱딱 찝어주면서 청중에게 "이깟 거 별거 아님 그냥 따라오셈" 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베를린 필의 연주야 두 말하면 섭하겠지만 특히 내게는 피아니시모가 인상적이었다. 이제까지 내가 들어본 어느 악단도 들려준 적 없는 그 또렷또렷함이라니... 아예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것 같았달까. 홀을 쩌렁쩌렁하게 울릴 때도 그냥 크기만 한 게 아니라 조금의 빈틈도 없이 꽉 찬 소리... 마치 김연아의 점프를 보는 듯한 감동이었음.

브루크너에 대해선 워낙 아는 게 없기 때문에; 말을 늘어놓기가 어렵기는 한데 별로 익숙하지 않은 곡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괜찮은 연주였던 것 같음. 마치 곡을 쭉 펼쳐서 보여주는 것 같았음. 악상의 흐름이 길게 이어지는데 막힘 없이 자연스럽게 나아가네. 오케스트라 전체가 그 흐름을 타면서 서서히 감정이 끌어올려지면서 느낀 그 순간순간의 감동을 잊기 힘들 것 같다. 3악장까지 만족스럽게 듣다가 4악장에 가서는 지쳐서 음악이 잘 안 들리긴 했지만.

베를린 필이 다녀가기만 하면 온통 내가 아는 클음 커뮤니티는 난리가 나던데 그 정도로 극딜당할 연주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음.

비톨트 루토스와프스키: 자허 변주곡
(바로 이어서) 마그누스 린드베리: 스트로크
쿠르타그 저르지: 사인들, 게임들과 메시지들
(바로 이어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첼로 모음곡 제3번 BWV 1009
코다이 졸탄: 무반주 첼로를 위한 소나타

장 기엔 케라스, 첼로

2013년 11월 13일
LG아트센터

처음에는 프로그램이 없는데다 예습도 안 하고 가서 (게을러서 보통 안 함) 처음 두 작품을 붙여서 연주하는지도 몰랐다. 프로그램을 사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자허 변주곡이 굉장히 짧은 곡이었다는 걸 깨달음. 들으면서 대충 느낀 2악장으로 나뉘는 게 아니었어 ㅋㅋㅋ 들으면서도 2악장이 더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만큼 린드베리의 '스트로크'가 괜찮은 작품이었음. 현대음악 독주곡답게 다양한 주법들이 망라되어 있는데, 사실 거기에 치우치지 않고 이미지를 형상화하는데 몰두한 듯하다는 생각을 (나중에 다시 들으면서) 함. 잠깐 쉬고 나서 쿠르타그를 연주했는데 그 특유의 압축된 표현이 드러나는 작품이었음. 케라스는 아주 매끄럽게 연주했지만 음악 자체는 약간 투박하면서도 진중했던 것 같고. 바로 바흐를 이어서 연주했는데 신기하다 싶을 만큼 잘 어울리더라.

케라스의 바흐는 음반으로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때와는 굉장히 다르게 다가왔음. 특히 귀족적이면서도 뭔가 붕 뜬 음색은 음악에 굉장히 특이한 캐릭터를 부여하고 있었음. 루바토가 약간 적응이 안 될 때가 있었다는 걸 빼면 아주 좋은 연주였음.

코다이의 소나타를 2부에 연주했는데 물론 대강 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도 장대한 곡이었다. ㄷㄷ 첼로 독주곡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곡이었는데 연주하는 것만큼이나 듣는 것도 체력을 요하는 곡이더라. 같이 가신 분은 첼로 하나에서 우주를 느낄 수 있는 곡이라면서 흥분하셨다 ㅎㅎ 들으면서 웃었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닌 듯.

앙코르로 바흐 모음곡 1번 일부와 뒤티외의 Trois strophes sur le nom de Sacher를 연주함. 바흐 모음곡은 그냥저냥이었는데 뒤티외에 충격을 받음. 정명훈의 협주곡 음반에 끼어있는 이 곡을 들을땐 이렇게 훌륭한 작품인 줄 몰랐는데 다시 한 번 클래스가 어떤 건지 확인했다.

이틀 연속으로 나다니느라 고생. 이제 시험 끝날 때까지 공연 못 다닐 걸 생각하니 조금 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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